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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P가 가진 우리 사회 지배력은 굉장하다. 경제성장률을 의미하는 GDP는 정권의 성적표가 된다. 문재인 정부 역시 경제성장률이 3.0%에 이르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경제운용의 방향이 소득주도성장에서 혁신 성장으로 옮겨졌다. GDP 개념의 한계와 문제점이 지적되고 부분적인 개선이나 대안 지표들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절대숫자’라는 타이틀은 여전하다.


GDP는 전쟁의 도구로 고안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숫자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이것이 로렌조 피오라몬티의 <GDP의 정치학>이라는 책의 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적 수준에서 GDP의 도그마는 민주주의도 피폐하게 만들었다. GDP는 기술 관료의 역할을 칭송했고, 정치를 전문가의 일로 만들었다. 늘어가는 군비 지출에서 보듯, GDP는 폭력의 문화를 영속화했다. 또한 오염산업의 오명을 씻어주었다. 이들은 국민 다수의 복지를 망가트렸다고 벌을 받기는커녕 국민소득에 기여했다고 외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로렌조 피오라몬티 <GDP의 정치학> 193쪽)


 이 책은 GDP의 모든 것 수학적 객관성 뒤에 숨어 있는 GDP의 정치적 본성을 밝힌다 이 책은 GDP의 역사를 추적하고, 그 공식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상세하게 풀어준다. GDP는 그저 통계 수치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조직하고 움직인다. GDP는 중립적 숫자라기보다는, 강력한 정치적 도구가 된 역사적 배경을 보여준다. 


  이 마법의 숫자는 1930년대에 미국이 대공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돕기 위해 발명되었다. GDP에 대한 초창기 계측이 발전하고 국민계청체계가 만들어 진 것은 몇 년 뒤,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경제 생산에 대한 하향식 명령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하자, GDP와 정치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더욱 분명해졌다. 실제로 산업 생산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정기적이고 세밀한 통계자료를 이용할 수 있었던 덕분에 미국 정부는 군수물자 생산에서 적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GDP는 그저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강력한 선전 도구이기도 했다. 20세기 중반 경제 성과의 평가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극의 경쟁 관계에서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었다. 중립성이라는 외양을 띠고 있을지라도 GDP는 하나의 사회 모델을 나타나게 되었고, 경제 과정뿐 아니라 정치과정이나 문화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GDP의 정치학> 20~21

 

 GDP에 대한 비난은 꾸준히 이어졌고,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대안 마련을 위한 위원회를 조직해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의 경제학자를 초빙하기도 했다. 여기에 하나 첨가하자면 케네디 미국 대통령도 GDP 회의론자였다는 사실이다. 암살되기 불과3개월 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캔자스 대학에서 행한 역사적 연설에서 그는 예언적인 말을 남겼다.


너무나오랫동안, 우리는 개인의 존엄과 공동체의 가치를 단지 물질적인것들의 축적을 위해 포기해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GNP는 대기오염과 담배 광고, 그리고 고속도로 위의 즐비한 시체를 수습하는 구급차까지 계산에 넣습니다. 또한 우리 집에 설치하는 특수 자물쇠와 그 자물쇠를 부수는 사람들을 가두기 위한 감옥 유지비용도 계산에 넣습니다. 삼나무 숲이 파괴되고, 무분별한 도시의 확장 속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포함됩니다....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건강, 그들이 받을 교육의 질, 그들의 놀이가 들어갈 자리는 없습니다. 우리의 위트나 용기도, 우리의 지혜나 배움도, 우리의 열정이나 애국심도 계산에 넣지 않습니다. 대신 모든 것을 간단히 계산해 냅니다.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만 제외하고 말입니다. <DGP의 정치학 101>




시간 없으면 결론(177~195쪽)만 읽어도 될 것 같다. 결론에는 1~4장의 내용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이라면 GDP의 역사적 성공 이유를 아마도 집단사고라는 용어로 설명하려 할 것이다. 실제로 특히 페쇄된 서클 내에서 발생하는 집단 사고의 동학을 살며보면, 사람들은 서클에서 일반적인 합의라고 간주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탓에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이같은 항상적 욕구는 의문을 제기하고 대안적 가능성을 제시할 능력을 제한하곤 하는데, 혹여 그랬다가는 동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만이나 반대가 결코 허용되지 않는 폐쇄된 의견 집단은 “새로운 도전에 열정적으로 그리고 창의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역량을 상실한다” 영국 여왕이 2009년 런던정경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녀는 왜 어느 경제학자도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는지 물었다. 집단 사고의 방향타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이 쥐며, 이 분야의 집단초병(mindguards)으로 행세하는 권위자들은 이를 승인한다. 이런 집단 패거리 정서에 영향을 받아 전문가들은 비판적이거나 경고를 보내는 목소리들을 의식적으로 무시하게 된다. GDP의 발명이 경제학자들에게 사회와 정치에서 주된 역할을 부여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책에서 소개한 몇몇 비판적 목소리들에도 불구하고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동조현상이 만연했다. 그리고 이런 전략적 만장일치 태도는 다른 사회과과학들과 대비되는 분과학문으로 경제학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도움을 줬다. “적어도 경제학자들은 모두 GDP의 극대화를 경제발전의 궁극적 목표로 삼는데 동의하거든. 다른 사회과학자들은 동의하게 뭐가 있지?” 이 세계에서 국민소득 통계의 발전은 경제학을 인간 사회에 대한 철학적 성찰(대체로 일화적 증거와 근사치에 근거하곤 하는)에서, 불변의 법칙과 완벽한 모델을 특징으로 하는 하나의 경성과학 hard science로 바꾸어 놓았다. GDP 추계와 전망을 공식발표하는 매 분기마다, 일군의 자칭 경제 ‘전문가’들이 미디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와 뉴스와 토크쇼를 주름잡는다. 그들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일자리 창출에 핵심적이라고 말하며 경제 성과를 향상시킬 수많은 요리법을 제시한다. GDP가 내려가면 그들은 비통해하며, 정치 지도자들에게 경제를 일으키는데 별다른 역할을 못했다며 비난을 퍼붓는다.(로렌조 피오라몬티 <GDP의 정치학>179~183쪽)

 

GDP의 발명은 경제학(그리고 경제학자)이 사회의 가장 강력한 힘이 된 시기를 나타내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시장 지상주의의 새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했다. 경제성장이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면서 성장의 생산자들은 마침내 그들이 무소불의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국민소득 통계에 따라 각 산업은 국가의 부에 대한 자신의 기여분을 자랑할 수 있었고, 그 기여만큼의 몫이 대중적으로 인정될 것을 요구했다. 한편으로 강력한 기업 부문이 경제성장을 지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함에 따라 중앙 정치 엘리트들은 권력과 권한을 기업에 양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높아진 성장 목표를 달성하는 과제는 기업들에게 경제에 대한 더욱 강력한 공적 투자를 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이는 이른바 자유 시장 사회에서 엄청난 규모의 정부지출 프로그램과 막대한 규모의 기업보조금을 낳았다.
 국민소득 통계에 따라, 각 산업은 국가의 부에 대한 자신의 기여분을 자랑할 수 있었고, 그 기여만큼의 몫이 대중적으로 인정될 것을 요구했다. 더욱이 GDP가 산업 생산의 부정적 외재성을 가려줌으로써 모든 산업들(특히 대량 오염 유발자)은 일종의 주름 제거 수술같은 화장으로 비난을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의 나쁜 점은 마술처럼 사라졌고, 사회는 만들어지는 ‘돈만 볼 수 있게 됐다. GDP는 모든 정책가들이 골몰해온 고용 정책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도록 했다.(로렌조 피오라몬티 <GDP의 정치학> 184~185쪽)

 

GDP 성장 주도의 고용 정책에 대한 묻지마식 집착은 노동조합들을 ‘사회적 보수파’의 주체로 바꿔놓았고, 이들은 시민사회 내의 좀 더 진보적인 그룹들과 분리시켰다. GDP는 그저 통계적 계량법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을 대표한다. GDP는 하나의 중립적 숫자라기보다는, 하나의 강력한 정치적 도구다. GDP는 제2차 세계대전시기 ‘전쟁 기계’로 처음 도입되어, 미국이 내부 소비를 줄이지 않고도 국내 경제와 국외의 전장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파악하게 해주었다. 그 다음엔 자본주의와 소비에트 제국 사이의 냉전 시기 동안 선전도구로 활용되었다. 당시에 지속적 경제성장률의 달성은 단지 산업 생산의 증진 정도가 아니라 더 나은 생활양식의 성취라는 의미로 선전되었다.(로렌조 피오라몬티 <GDP의 정치학> 186쪽)

 

GDP는 커다란 거짓말 위에 세워진다. 이 거짓말은 시장이 부의 유일한 생산자라고 말한다.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것, 화폐에 기반을 둔 정형화된 금융거래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우리 사회와 경제의 안녕에 얼마나 중요하든 간에 계산되지 않는다. 가격표는 GDP의 궁극적 상징이다. 끊임없는 생산과 끝없는 소비가 여기에 내재한 가치다. 내구성, 재활용성과 자가 생산은 최악의 적이다...인류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단지 자연의 부를 화폐로 바꿀 뿐이다. EF 슈마허에 따르면, GDP패러다임은 “자신이 딛고 서 있는 바로 그 토대를 소비한다” 로렌조 피오라몬티 <GDP의 정치학> 190~191쪽)

  

 GDP는 우리 사회에도 심각한 영향을 행사했다. 여가를 즐기는 시간을 줄이고 노동부담을 증가시켰다. 이는 증가하는 압력과 끊임없는 번아웃 상태라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여가 시간의 활용 역시 오락산업이 패키지로 만들어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이 줄어들면서 여가를 활용할 여러 수단들이 감당못할 정도로 비싼 것이 되어 버렸다. 쇼핑몰이 만남의 장소였던 공공 광장을 대체했다. 풍요 사회는 스포츠센터, 체육관, 풀장 등 다양한 사적 클럽들로 넘쳐난다. 이제는 거대 메가스토어에서 구할 수 있는 일련의 필수 불가결한 도구들(값비싼 유니폼, 셔츠, 모자 장갑, 선글라스 등)없이는 야외 활동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로렌조 피오라몬티 <GDP의 정치학> 194쪽)



Posted by 박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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