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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에 읽은 책에 대해 정리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너무 벅차다. 그래서 편법적인 ‘2016년에 읽은 책 한줄 독후감’으로. 재현아 너는 책 읽는 척하더니 요것밖에 못 읽었니. 젊었을 때 좀 많이 읽을껄하는 후회가 또 밀려온다.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마크 저커버그가 꼭 읽어볼 책으로 추천했다는 구모 국제부장의 페북을 보고 얼른 사서 읽은 책. 135억년의 우주와 인간의 역사를 588쪽에 담아낸 흥미진진한 책. 역사적 사실을 묶어내는 상상력에 탄복. 그런데 <총, 균, 쇠>와 평점을 비교한다면 난, 후자에 한표

 

 인간 공동체의 지식은 고대 인간 무리의 그것보다 훨씬 크지만, 개인 수준에서 보자면 고대 수렵채집인은 역사상 가장 많이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수렵채집인이 삶을 영위하는 방식은 지역마다 계절마다 크게 달랐지만, 대체로 이들은 그 후손인 농부, 양치기, 노동자, 사무원 대부분에 비해서 훨씬 더 안락하고 보람 있는 생활을 영위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풍요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평균 40~45시간 일하며 개발도상국에선 평균 60시간 심지어 80시간을 일한다. 이에 비해 지구상 가장 척박한 곳에서 살아가는 수렵채집인, 예컨대 칼라하리 사막 사람들은 주 평균 35~45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고대 수렵 채집인은 전염병의 영향도 덜 받았다. 농경 및 산업사회를 휩쓴 대부분의 전염병은 가축이 된 동물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것이 사람에게 전파된 것은 농업혁명 이후 부터다. 건강에 유익한 음식을 다양하게 먹고 주당 일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으며, 전염병도 드물었으니, 이를 두고 많은 저눈가는 농경 이전 수렵채집 사회를 ‘최초의 풍요사회’라고 불렀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83~87쪽)

 

 인류가 농업으로 이행한 것은 기원전 9500~8500년경 터키 남동부, 서부 이란, 에게 해 동부 지방에서였다. 밀을 재배하고 염소를 가축화한 것은 기원전 9000년경이었다. 완두콩과 렌즈콩은 기원전 8000년경, 포도는 기원전 3500년 제배가 시작되었고, 말은 기원전 4000년부터 기르기 시작했다. 쌀, 옥수수, 감자, 수수, 보리는 기원전9500에서 3500년 사이에 작물화했다.
 지난 2천년 동안 주목할 만한 식물을 작물화하거나 동물을 가축화한 사례가 없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수렵채집인 시대의 것이라면, 우리의 부엌은 고대 농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재러미 다이아몬드 총균쇠)  농업혁명은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은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121~129쪽)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몇십년간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는 기계를 무수히 발명했다.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전화, 휴대전화, 컴퓨터, 이메일 이들 기계는 삶을 더 여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친다. 사치품의 함정 이야기에는 중요한 교훈이 들어있다 인류가 좀 더 편한 생활을 추구한 결과, 막강한 변화의 힘이 생겼고, 이것은 아무도 예상하거나 희망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점이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135~136쪽)

 

 미래의 도래. 농업혁명 덕에 미래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농부들은 언제나 미래를 의식하고 그에 맞춰서 일해야 했다. 그래서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 온 무엇이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153쪽)

 

 모든 사회는 상상의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한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202쪽)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이었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246쪽)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의 체계다. 상대성 이론이 종교가 아닌 것은 이것을 기초로 한 인간의 가치와 규범이 없기 때문이다. 축구가 종교가 아닌 것은 그 규칙이 초인적 칙령을 반영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불교, 공산주의는 모두 종교다. 모두가 초인적 신성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의 체계이기 때문이다.(초인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차이를 주목하라. 불교의 자연법칙과 마르크시즘의 역사법칙은 초인적이다. 인간에 의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것은 아니다.)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인류문화는 진보를 믿지 않았다. 황금시대는 과거에 있었고, 세상은 퇴화하지 않더라도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지혜를 엄격히 추종한다면 좋았던 옛 시절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고 인간의 창의성으로 일상생활의 이런저런 측면을 개선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지식으로 세상의 근본 문제를 극복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바벨탑, 이카루스 이야기를 비롯해 수많은 신화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모든 시도는 반드시 실망과 좌절을 부른다고 가르쳤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375쪽)

 

 자본주의 교리에서 가장 신성한 제 1계율은 “생산에 따른 이윤은 생산 증대를 위해 재투자돼야 한다”이다. 자본이란 생산에 투자되는 돈과 재화와 자원을 말한다. 반면에 부는 땅에 두혀 있거나 비생산적 활동에 낭비된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442쪽)

 산업혁명은 시간표와 조립라인을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틀로 변화시켰다. 공장이 자신의 시간표를 인간들의 행동에 강요한 직후부터 학교 역시 정확한 시간표를 채택했으며 병원과 정부기관, 식품점이 그 뒤를 따랐다. 시간표 체계가 확산된 결정적 고리는 대중교통이었다. 1784년 영국에서 운행시간표를 붙인 마차 서비스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라디오 방송국이 처음으로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시보 방송이었다. 시각이 전쟁 발발 소식보다 더 먼저 보도된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499쪽)

 

 전쟁의 비용이 치솟은 반면, 그 이익은 작아졌다. 오늘날 부는 주로 인적 자본과 조직의 노하우로 구성된다 그 결과 이것을 가져가거나 무역으로 정복하기 어려워졌다. 평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 수익성이 좋아졌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527쪽)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인류는 진보를 믿지 않았다. 황금시대는 과거에 있었고, 세상은 퇴화하지 않더라도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지혜를 엄격히 추종한다면 좋았던 옛 시절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고 인간의 창의성으로 일상생활의 이런저런 측면을 개선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지식으로 세상의 근본 문제를 극복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인류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고 새 도구를 발명함으로써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터무니 없었다. 그것은 오만이었다. 바벨탑, 이카루스, 골롬 이야기를 비롯해 수많은 신화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모든 시도는 반드시 실망과 좌절을 부른다고 가르쳤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375쪽)

 과학과 자본주의가 유럽 제국주의가 21세기 유럽 이후 세상에 남긴 가장 중대한 유산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400쪽)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마디도 묻지 마세요 이들은 당신의 딸을 훔치러 왔어요”(달착륙 훈련생들에게 원주민 부족이 하는 말.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404쪽)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책의 주된 주장이다. 더 나아가 이같은 협동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믿을 수 있는 독특한 능력 덕분이라고 하다. 신, 국가, 돈, 인권 등이 그런 예다. 인간의 대규모 협동시스템-종교 정치체제, 교역망, 법적 제도-은 모두가 궁극적으로 허구, 즉 지어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종의 역사는 세가지 혁명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지혁명(우리가 똑똑해진 시기), 농업혁명(자연을 길들여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게 만든 시기), 과학혁명(우리가 위허말 정도의 힘을 갖게 된 시기)이다. 호모사피엔스는 불과 20여만년전에 등장, 그 이후 대부분 동아파프리카를 떠돌며 수럽채집, 그리고 약 7만년전부터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 이후 1만200년전 인류는 농업혁명에 돌입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식량의 90%는 기원전 9500~3500년에 우리가 길들인 가축과 농작물에 기원을 두고 있다. 농업 덕분에 가용 식량은 늘었지만, 이같은 번영의 결과는 행복이 아니라 인구 폭발과 만족한 엘리트였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가장 큰 사기였다. 농업혁명은 제국을 출현시키고 교역망을 확대했으며 돈이나 종교같은 ‘상상의 질서’를 낳았다.(역자 후기 중 줄거리)

 우리는 언어능력 덕분에 공통의 신화 혹은 허구를 발명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세가지는 화폐, 종교, 제국이었다. 이것이 대륙을 가로지며 사람들을 결속했다 자본주의는 경제이론이라기보다 일종의 종교이다 제국은 지난 2천년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정치체제였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역자 후기 중 평가)

 

 

■<창의성을 지휘하라>/에드 캣멀
-이 책도 저커버그의 추천작인데, 좀 실망했다. 그나마 맨 뒤 후기에 ‘우리가 알던 스티브 잡스’ 부분으로 실망감을 조금 복구할 수 있었다. 블로그에 정리해 둔 모이제스 나임의 <권력의 종말>까지 저커버그가 꼽아준 책 중 3권을 읽은 셈이지만, 그만큼 저커버그처럼 살지 못하고 있음.

 

 에드워드 데밍은 어떤 직급의 직원이라도 제조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면 조립라인을 멈추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요타의 접근법은 생산과정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사람들에게 제품의 품질을 높일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근로자들은 자신이 단지 컨베이어벨트 위를 지나가는 부품들을 조립하는 영혼없는 톱니바퀴 같은 존재가 아니라 제품 생산과정의 문제를 지적하고 변화를 제안하고 문제 해결에 기여해 회사를 키우는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을 느꼈다.
 에드워드 데밍의 이론을 연구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를 통해 경영 이론의 틀을 잡을 수 있었다. 데밍의 품질관리 이론은 ‘모든 직원은 먼저 허락받지 않은 채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라는 민주적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도요타는 수직적 직급 구조를 지닌 조직이지만 이런 민주적 원칙을 충실히 실천한 결과, 결함이 적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에드 캣멀 <창의성으로 지휘하라> 84~85쪽)

 최선의 대응책은 모든 직원이 각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고 격려하는 것이다. 모든 직원이 직급에 상관없이 상사에게 허가받지 않고 문제 해결에 착수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직원들이 조립라인을 멈출 수 있는 기업문화는 직원들의 창의력 발휘를 극대화한다.  (에드 캣멀 <창의성으로 지휘하라> 230쪽)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다. “일단 과거의 경험에서 지혜를 얻었다면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뜨거운 난로 위에 앉은 고양이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 뜨거운 난로에 덴 고양이는 뜨거운 난로 위는 물론 차가운 난로 위에도 앉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서 고양이는 과거의 경험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을 상징한다.  (에드 캣멀 <창의성으로 지휘하라>249쪽)

  잡스도 이처럼 통하지 않는 아이디어를 버리는 데 능했다. 잡스는 누군가와 논쟁해서 상대방의 견해에 설득되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굽혔다. 잡스는 한 때 자신이 그럴듯하다고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잘못된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는 아이디어를 제안할 때 전력을 쏟았지만, 아이디어를 관철하는 일에 자존심을 걸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누가 그 아이디어를 냈는지에 따라 아이디어를 수용하거나 비평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잡스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는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고 허공에 아이디들을 막 던졌다. 만약 아이디어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통하지 않는 것 같으면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에드 캣멀 <창의성으로 지휘하라> 후기 우리가 알던 잡스 중)

 

■<전문가의 독재>/윌리엄 이스털리
-내가 알던 시장주의자 하이에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 책.

 

 빈곤의 진정한 원인은 권리를 박탈당한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아무런 견제없이 행사되는 국가의 권력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권리를 침해당해도 이를 묵과하고 기술적 해결책으로 눈을 돌리는 약삭빠른 속임수는 오늘날의 발전이 처해 있는 도덕적 비극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는 그 자체로 윤리적 목적이다.(윌리엄 이스털리 <전문가의 독재> 16~17쪽)

 하이에크는 국가적 목표란 어떤 집단들의 어떤 목표들이 다른 집단의 다른 목표를 희생시킨 대가로 달성된다는 사실을 은폐할 뿐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서로 상충되거나 경쟁하는 목표들, 달리 말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욕구들을 전부 다 충족시킬 수는 없다. 사실 그 중에서 일부를 선택하는 것이 경제와 정치의 본질이다. 따러서 특정 목표들을 선택해 놓고서 그 선택을 국가적 발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는 특정 목표들을 달성하려고 할 때 희생해야 할 다른 목표들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임임 뜻한다. 전문가들의 권고에 따른 국가적 발전은 전문가들이 여러 가지 목표 중 어떤 것에 우선권을 줄 것인지를 결정할 위치에 있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선택한 우선순위를 사회에 강제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처럼 중요한 판단을 전문가에게 맡겨 버리는 일이 생기기 어렵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은 민주주의로는 일이 되지 않는다든가 민주주의가 그들이 생각하는 발전을 촉진하지 못한다며 곤혹스러움을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니 전문가들은 독재자를 환영할만하다.(윌리엄 이스털리 <전문가의 독재> 54~55쪽)

 

 

■<GDP의 정치학>/로렌조 피오라몬티
-시간 없으면 결론만 읽어도 1~4장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음.

 

사회심리학자들이라면 GDP의 역사적 성공 이유를 아마도 집단사고라는 용어로 설명하려 할 것이다. 실제로 특히 페쇄된 서클 내에서 발생하는 집단 사고의 동학을 살며보면, 사람들은 서클에서 일반적인 합의라고 간주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탓에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이같은 항상적 욕구는 의문을 제기하고 대안적 가능성을 제시할 능력을 제한하곤 하는데, 혹여 그랬다가는 동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만이나 반대가 결코 허용되지 않는 폐쇄된 의견 집단은 “새로운 도전에 열정적으로 그리고 창의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역량을 상실한다” 영국 여왕이 2009년 런던정경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녀는 왜 어느 경제학자도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는지 물었다. 집단 사고의 방향타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이 쥐며, 이 분야의 집단초병(mindguards)으로 행세하는 권위자들은 이를 승인한다. 이런 집단 패거리 정서에 영향을 받아 전문가들은 비판적이거나 경고를 보내는 목소리들을 의식적으로 무시하게 된다. GDP의 발명이 경제학자들에게 사회와 정치에서 주된 역할을 부여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책에서 소개한 몇몇 비판적 목소리들에도 불구하고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동조현상이 만연했다. 그리고 이런 전략적 만장일치 태도는 다른 사회과과학들과 대비되는 분과학문으로 경제학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도움을 줬다. “적어도 경제학자들은 모두 GDP의 극대화를 경제발전의 궁극적 목표로 삼는데 동의하거든. 다른 사회과학자들은 동의하게 뭐가 있지?” 이 세계에서 국민소득 통계의 발전은 경제학을 인간 사회에 대한 철학적 성찰(대체로 일화적 증거와 근사치에 근거하곤 하는)에서, 불변의 법칙과 완벽한 모델을 특징으로 하는 하나의 경성과학 hard science로 바꾸어 놓았다. GDP 추계와 전망을 공식발표하는 매 분기마다, 일군의 자칭 경제 ‘전문가’들이 미디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와 뉴스와 토크쇼를 주름잡는다. 그들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일자리 창출에 핵심적이라고 말하며 경제 성과를 향상시킬 수많은 요리법을 제시한다. GDP가 내려가면 그들은 비통해하며, 정치 지도자들에게 경제를 일으키는데 별다른 역할을 못했다며 비난을 퍼붓는다.(로렌조 피오라몬티 <GDP의 정치학>179~183쪽)

 

GDP의 발명은 경제학(그리고 경제학자)이 사회의 가장 강력한 힘이 된 시기를 나타내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시장 지상주의의 새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했다. 경제성장이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면서 성장의 생산자들은 마침내 그들이 무소불의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국민소득 통계에 따라 각 산업은 국가의 부에 대한 자신의 기여분을 자랑할 수 있었고, 그 기여만큼의 몫이 대중적으로 인정될 것을 요구했다. 한편으로 강력한 기업 부문이 경제성장을 지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함에 따라 중앙 정치 엘리트들은 권력과 권한을 기업에 양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높아진 성장 목표를 달성하는 과제는 기업들에게 경제에 대한 더욱 강력한 공적 투자를 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이는 이른바 자유 시장 사회에서 엄청난 규모의 정부지출 프로그램과 막대한 규모의 기업보조금을 낳았다.
 국민소득 통계에 따라, 각 산업은 국가의 부에 대한 자신의 기여분을 자랑할 수 있었고, 그 기여만큼의 몫이 대중적으로 인정될 것을 요구했다. 더욱이 GDP가 산업 생산의 부정적 외재성을 가려줌으로써 모든 산업들(특히 대량 오염 유발자)은 일종의 주름 제거 수술같은 화장으로 비난을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의 나쁜 점은 마술처럼 사라졌고, 사회는 만들어지는 ‘돈만 볼 수 있게 됐다. GDP는 모든 정책가들이 골몰해온 고용 정책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도록 했다.(로렌조 피오라몬티 <GDP의 정치학> 184~185쪽)

 

GDP 성장 주도의 고용 정책에 대한 묻지마식 집착은 노동조합들을 ‘사회적 보수파’의 주체로 바꿔놓았고, 이들은 시민사회 내의 좀 더 진보적인 그룹들과 분리시켰다.
 GDP는 그저 통계적 계량법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을 대표한다. GDP는 하나의 중립적 숫자라기보다는, 하나의 강력한 정치적 도구다. GDP는 제2차 세계대전시기 ‘전쟁 기계’로 처음 도입되어, 미국이 내부 소비를 줄이지 않고도 국내 경제와 국외의 전장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파악하게 해주었다. 그 다음엔 자본주의와 소비에트 제국 사이의 냉전 시기 동안 선전도구로 활용되었다. 당시에 지속적 경제성장률의 달성은 단지 산업 생산의 증진 정도가 아니라 더 나은 생활양식의 성취라는 의미로 선전되었다.(로렌조 피오라몬티 <GDP의 정치학> 186쪽)

 

GDP는 커다란 거짓말 위에 세워진다. 이 거짓말은 시장이 부의 유일한 생산자라고 말한다.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것, 화폐에 기반을 둔 정형화된 금융거래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우리 사회와 경제의 안녕에 얼마나 중요하든 간에 계산되지 않는다. 가격표는 GDP의 궁극적 상징이다. 끊임없는 생산과 끝없는 소비가 여기에 내재한 가치다. 내구성, 재활용성과 자가 생산은 최악의 적이다...인류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단지 자연의 부를 화폐로 바꿀 뿐이다. EF 슈마허에 따르면, GDP패러다임은 “자신이 딛고 서 있는 바로 그 토대를 소비한다” 로렌조 피오라몬티 <GDP의 정치학> 190~191쪽)

 정치적 수준에서 GDP의 도그마는 민주주의도 피폐하게 만들었다. GDP는 기술 관료의 역할을 칭송했고, 정치를 전문가의 일로 만들었다. 늘어가는 군비 지출에서 보듯, GDP는 폭력의 문화를 영속화했다. 또한 오염산업의 오명을 씻어주었다. 이들은 국민 다수의 복지를 망가트렸다고 벌을 받기는커녕 국민소득에 기여했다고 외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로렌조 피오라몬티 <GDP의 정치학> 193쪽)

 

 GDP는 우리 사회에도 심각한 영향을 행사했다. 여가를 즐기는 시간을 줄이고 노동부담을 증가시켰다. 이는 증가하는 압력과 끊임없는 번아웃 상태라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여가 시간의 활용 역시 오락산업이 패키지로 만들어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이 줄어들면서 여가를 활용할 여러 수단들이 감당못할 정도로 비싼 것이 되어 버렸다. 쇼핑몰이 만남의 장소였던 공공 광장을 대체했다. 풍요 사회는 스포츠센터, 체육관, 풀장 등 다양한 사적 클럽들로 넘쳐난다. 이제는 거대 메가스토어에서 구할 수 있는 일련의 필수 불가결한 도구들(값비싼 유니폼, 셔츠, 모자 장갑, 선글라스 등)없이는 야외 활동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로렌조 피오라몬티 <GDP의 정치학> 194쪽)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안 읽은 책을 찾아 책장 훑어보다 이건 읽었었는데 왜 내용이 생각이 안나지(앞에 기차 얘기만 생각나고 나머지는 기억이 없었다)하며 다시 읽은 책. 그런데 두 번 읽어도 사실 정의란 무엇인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어서 다시 읽었다. 세번을 읽은 셈인데, 쩝 나의 난독증을 한탄하게 만든 책이다.

 

분노는 자격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얻는다고 생각될 때 느끼는 특별한 종류의 화다. 다시 말해 부당함에 대한 화다.(마이클 센델 <정의란 무엇인가>)

상여금이 납세자에게서 나오는 이유는 회사가 망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불만의 핵심이다. 미국인이 상여금과 구제금융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탐욕을 포상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실패를 포상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인은 탐욕보다 실패에 더 엄격하다. 시장 중심 사회에서는 야심찬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이익 추구와 탐욕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의 경계는 분명하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포상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이다.(마이클 센델<정의란 무엇인가> 29쪽)

 사람들이 실패에 지급된 상여금에 분노하자 최고경영자들은 금융수익은 전적으로 자기들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통제 불능의 힘에도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일리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잘 나갈 때 지나치게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행위도 얼마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마이클 센델<정의란 무엇인가> 32쪽)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구별해 소개했다. 그 중 하나가 공리주의 시각으로, 이에 따르면 정의의 개념을 규정하고 무엇이 옳은 일인가를 결정하려면 사회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두 번째는 정의를 자유와 연관시키는 시각으로, 자유지상주의자들이 관련 예시를 제시한다. 이들은 소득과 부의 공정한 분배란 규제없는 시장에서 재화와 용역의 자유로운 교환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시장을 규제하는 행위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기에 부당하다. 세 번째 정의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받는 것, 즉 재화를 분배해 미덕을 포상하고 장려하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덕을 기초로 삼는 사람은 정의를 좋은 삶에 관한 고찰과 연관짓는다. 칸트는 첫 번째 시각(행복극대화)과 세 번째 시각)미덕 장려)을 거부한다. 둘 중 어느 것도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정의와 도덕을 자유와 연관시키는 두 번째 시각을 열렬히 옹호한다.(마이클 센델 <정의란 무엇인가> 150쪽)

(칸트의) 자율적이라는 것은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 곧 정언명령(=조건이 없다는 뜻)에 지배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언명령은 (자신을 포함해) 모든 사람을 단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존중하라고 한다. 따라서 칸트에게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자신을 존중하고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마이클 센델 <정의란 무엇인가> 182쪽)

 공정하게 행동해야 공정한 사람이 되고, 절제된 행동을 해야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행동을 해야 용감한 사람이 된다.(아리스토텔레스)<정의란 무엇인가 276쪽)

 삶이란 특정한 통합이나 일관성을 갈망하는 서사적 탐색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갈림길에 마주쳤을 때, 우리는 완전한 삶, 내가 관심을 갖는 삶으로 이끄는 길을 찾아내려 애쓴다....나는 사회적 역사적 역학과 지위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내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 정체성이 형성된 공동체의 이야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310쪽)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동적 평형>/후쿠오카 신이치
-과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 줄 몰랐다. 이 책을 읽고 <코스모스>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주문했다. 이 두권은 아직 중간 정도밖에 못 읽었지만 이 책들을 읽으면서 과학이 흥미롭게 편협한 상식의 파괴와 사고의 확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이전에 미처 몰랐을까.

 

■<김수영 전집> <서정주 전집>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김용택 시집>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함민복 시집> <입 속의 검은 잎/기형도 시집>
-좋은 시를 읽으면 그것보다 더 편안한 휴식이 없는 걸 깨달았다. 시집은 전집류 두 권을 제외하고 출퇴근하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읽었다. 내 언어의 빈곤함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채식주의자> <여수의 사랑>/한강
-맨부커상 수상 소식에 교보문고로 달려갔더니 한 발 늦어 <여수의 사랑>부터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여수의 사랑’이 더 좋았다. 작가도 말했듯이 채식주의자는 나에게 불편한 소설이기는 했다.

 

■<중국식 룰렛> 은희경 소설집
-은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만든 책. 내 얘기도 많은 것 같은 착각까지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 밖에 물러나 있기를 자청한 것은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패배자가 되기 두려웠던 것이다.
 나쁜 뉴스를 보고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면 남의 행운 역시 부러워해서는 안된다. 지금 역시도 그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큰 행운이 없었으니 0.01퍼센트의 불행 또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대체 이처럼 비겁한 자기위안의 논리로 얼마나 많은 억울함과 박탈감에 굴복해왔던 것일까. 식은 밥 같은 중간지대의 안전이 그에게 남긴 것은 고독뿐이었다. <별의 동굴>

 

 

■<두 도시 이야기>/찰스 디킨스,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모 선배가 새로 출판된 ‘두 도시 이야기’를 선물(?)로 줬다. 그 분께 감사. 내가 어렸을 때 얼마나 책을 읽지 않고 술만 먹고 다녔는지 반성하며 읽은 책들.

 

 민중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한 사람은, 그런 민중에게 돌아가야 할 자원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거나 엉뚱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한 사람은, 이런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오래전부터 인정한 사람은, 자신들이 목격한 혁명을 인정할 수 없다는 엉뚱한 소리가 정말로 역겹게 들린다. 이렇게 떠들어대는 허풍도 그렇지만 피혜할 대로 피폐한 나라를, 하늘과 땅마저 지칠대로 지쳐서 혼란에 휩싸인 나라를 복구하겠다고 엉뚱한 계획을 늘어놓으며 떠들어대는 허풍은 진실을 아나는 사람이라면 꾹 참고 못 들은 척 넘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334)

 

 

 

■<담론>/신영복
-2015년에 읽을 것 같은데 정리의 흔적이 없어서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입니다. 걸어온 인생의 결론입니다. 대단히 완고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설득하거나 주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이 필요합니다. (신영복 <담론> 14쪽)

 

傲霜孤節...이상은 현실의 존재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 게바라의 평전을 읽어보면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리얼리스트가 되라. 그러나 이룰 수 없는 이상은 반드시 하나씩 가져라”

泰山不辭讓土 河海不擇細流

간디가 열거하는 ‘나라를 망치는 7가지 사회악’이 있습니다.
원칙없는 정부 Politics without principle
노동없는 부   Wealth without work
도덕없는 경제 Commerce without morality
희생없는 신앙 Worship without sacrifice (신영복 <담론> 191쪽)

 

관계는 존재의 기본형식입니다.

사회에서도 버스나 지하철은 물론이고 교육, 주거, 주차 등 좁은 공간을 서로 다투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부딪치고 증오하고 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서민의 생활입니다. 그러나 교도소처럼 동일한 표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때마다 다른 사람, 다른 대상과 충돌합니다. 표적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충돌을 야기하는 구조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회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깨닫기가 더 어렵습니다.(신영복 <담론> 301쪽)

 

조선 건국은 이러한 두가지 모순을 극복하는 정치 과정이었습니다. 모순 극복에는 사상과 주체가 동시에 등장해야 합니다. 사회 변혁은 사상 투쟁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사상투쟁은 그 투쟁을 견인해 나갈 주체가 있어야 합니다. 성리학이 개혁 사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추진한 주체가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신진사류입니다. (신영복 <담론>382쪽)

 

(그러나) 100년 뒤인 1500년 후가 되면 절대군주제의 자취가 거의 없어지고 훈구척신들이 토지와 권력을 장악합니다. 초선 초기 개혁적 이미지는 없어지고 확실하게 보수화됩니다. 이 때부터 사림이 개혁 주체로 등장합니다. 고려 말의 데자뷰입니다. 그러나 개혁 세력은 훈구 보수 세력과의 싸움에서 판판이 깨집니다. 사림과 훈구 세력이 싸워서 사림이 화를 당하는 것을 사화라고 합니다.

 그 후의 역사에서 훈구 척신들의 실상이 잘 드러납니다. 훈구 세력들은 위기 대응 능력이 없었습니다. 왜군의 침략으로 임금이 신의주까지 몽진하고 임금의 권력과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훈구척신들은 군주 곁을 떠납니다. 지방의 사림들이 의병을 조직해서 대응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의병을 조직해서 싸웠던 동인들이 광해군 정권을 장악합니다. 그러나 훈구 보수 세력은 다시 남인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하면서 광해군을 몰아냅니다. 인조반정입니다. 호시탐탐하던 서인이 다시 권력을 장악합니다. 민족투쟁에서는 무력하고 비겁한 반면, 국내의 계급투쟁에서는 예의 그 탁월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그 이후 역사는 잘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정묘.병자호란을 초래합니다. 역시 훈구 보수세력은 무능의 극치를 보입니다. 북벌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지배구조를 유지하기에 급급합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노론 세력들은 지금까지 지배권력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실학, 천주학도 정권에서 소외된 변방의 남인 중심으로 수용됩니다. 천주학은 당시 신분사회에서 만민 평등의 개혁사상입니다. 민중해방론, 여성해방론입니다. 바야흐로 민강의 시대가 개막됩니다. 연이은 농민반란과 동학농민혁명에 이르기까지 민중이 역사 무대에 등장합니다. 계급모순과 민족 모순의 동시 타격을 겨냥한 투쟁을 조직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봉건 지배 계층은 외세와 야합하여 이러한 민중의 요구를 유린하고 결국 식민지의 길로 들어섭니다. (신영복 <담론> 382~369 피라미드의 해체 요약)

 

지남철의 여윈 바늘 끝처럼 항상 고민하고 모색하는 존재가 지식인의 초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대응방식입니다. 이 때 실이라는 것은 접촉한다(接)는 뜻입니다. 사실이나 현실에 나아가서, 즉 현실에 비추어서 그것의 해답(是)을 모색하는 방식입니다. 탁상의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방식이다.  Here and Now 그리고 How 물리의 방식이라면 Bottom and Tomorrow와 Why가 진리방식의 대응입니다. 지남철의 여윈 바늘 끝처럼 불안하게 전율하고 있어야 하는 존재가 지식인의 초상입니다. 어느 한쪽에 고정되면 이미 지남철이 아니며 참다운 지식인이 못됩니다.(신영복 <담론> 403쪽)

 

 자기의 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됩니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는 옆 사람만큼의 변화밖에 이룰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신영복 <담론> 239쪽)

Posted by 박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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