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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한 발 멀리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세평’


금융 분야를 담당하던 현장 기자 시절, 한 시중은행 홍보팀에 과장급 직원이 전입했다. 지방 영업점에서 근무해 홍보 업무는 처음이라고 했지만 누구보다 능숙하게 역할을 수행했다. 궁금했다. 전국 1000여개의 점포에 흩어져 있는 인력 중에 어떻게 특정 업무에 적합한 사람을 이처럼 콕 집어낼 수 있는지. 행장이나 인사담당 부행장 등을 만날 때마다 은행들의 인사 관리 비법을 물었다. 대강 이러했다. 한 사람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수집해 기록한다. 근무태도 이외에 성격, 취향 등 ‘세평(世評)’을 축적한다는 것이다. 상급자의 평가는 물론 고객이나 동료의 평가도 중요했다. 인사 담당 직원들은 식사자리, 술자리에서 느꼈던 특정 인물의 장단점을 팩트에 기반해 보고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세평은 은밀히 수집, 축적되다보니 당사자에게 족쇄가 될 수 있다. 주변의 오해로 사실이 왜곡될 수 있고, 부정적 세평이 인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져 다시 세평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 팀장급 행원은 입행 초기 ‘입력된’ 세평을 바로잡기 위해 인사 담당자를 찾아가 직접 해명한 ‘모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김○○’, 나이 50세. 2013년 초에 이혼을 함(전처에 문제가 있었음). 또 다른 ‘김○○’, 33세. 성향 매사에 업무적 불만이 많고, 사소한 것에 문제 발생 시 이해보다는 문제점을 많이 제기.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가 지난 27일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의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위험인력 관련 사항 파악 문건’의 일부 내용이다. 삼성은 2013년 6월부터 그린화 작업(노조 와해 작업)을 위해 협력업체로부터 조합원들 모르게 경력, 출신 학교는 물론 결혼·이혼 여부, 채무 등 재산 상태, 임신이나 정신병력 등 건강 상태, 성향, 노조가입 동기 등을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왔다. 세평을 넘어선 “사찰보고서”(심상정 정의당 의원)인 셈이다.

정권 차원의 사찰과 감시가 시민의 삶에 개입할 때 개인으로서의 삶은 산산이 부서진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총리실과 국정원·경찰·군을 동원한 민간인 사찰,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 등의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경제적 권력을 쥔 기업이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사찰한다면 그 역시 개인의 삶을 극단의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 저임금과 안전사고 등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해 노조에 가입했던 4년차 기사 최종범씨(32). 삼성은 노조가 생긴 센터의 일감을 다른 센터로 돌려 임금을 깎으며 압박했고, ‘표적 감사’로 대응했다. 결국 그는 2013년 노조 결성 3개월 만에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다”며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양산분회장 염호석씨(34)도 ‘일감 빼돌리기’ 등에 시달리다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가 받은 마지막 4월 월급은 41만원, 3월에는 70만원이었다.

“은밀하고 집요한 노조 와해로 인해 집단적 노사관계를 통한 생존권 보장이 어려워진 개인이 입은 피해는 장기적인 근로조건의 개선 가능성을 원천에서 봉쇄당하기 때문에 부당해고 등 외부로 쉽게 드러나는 피해보다 근로자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고 구제도 어려움.” 검찰이 보도자료에 건조하게 써내려간 문장은 노동자의 삶에 흐르는 억울함, 울분, 피눈물 속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우리의 고용관계는 기업인에게 부여하는 의무는 적고 근로자에 대한 지시의 범위는 넓다. 기업인은 고용의 계속성을 유지하고 경제적 보상을 지급하면서 근로자에 대한 명령에 있어서는 거의 제한이 없다.”(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중)

기업 조직은 법적으로나 실체로나 매우 비민주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위해 왜 그토록 애썼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사건을 담당한 김수현 부장검사는 “무노조 원칙이 확고하게 신념화되었다”고만 언급했다. 그러나 과거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전사적인 역량이 동원된 조직 범죄’를 감행한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삼성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기술 발전과 국내외 경영 환경도 급변하고 있어 변화와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삼성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바뀌어야 한다. 기업이 바뀌려면 기업인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통찰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널드 코스에 따르면 기업이 소유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무엇을 생산할지는 전적으로 기업가의 결정에 달려 있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진행 중이면서 뜨거운 논란을 낳고 있다. 이 부회장을 석방한 항소심 재판 결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 삼성 내부에서도 당혹해할 정도였다. 이는 이 부회장이 차세대 기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줘야 할 때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변하지 않는다면 이 부회장에 대한 세평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박재현 산업부장

Posted by 박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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