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7년 7월. 중딩 아들(당시 기준)과 뉴욕, 워싱턴, 나이아가라폭포, 토론토, 몬트리올, 퀘백, 뉴욕에 이르는 8월10일짜리 패키지 여행을 다녀왔다. 지금까지 출장과 여행 등으로 많은 곳을 구경은 했지만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을 못가봤다는 게 아쉬웠고, 아이들에게도 뉴욕이란 곳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 통보받은 보직인사로 1년이 지난 뒤에야 추억을 더듬어 볼 시간이 생겨 정리해 본다.

 여행사 상품은 뉴욕(2)-워싱턴(1)-나이아가라(1)-토론토(1)-퀘백(1)-몬트리올(1)-우드버리-뉴욕(1)이지만 나는 여기에 하루를 더 추가했다. 돌아오는 비행편이 같았기 때문에 하루정도 뉴욕에서 자유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마지막 숙소는 예약사이트에서 공항에서 가까운 호텔을 잡았다. 자유여행 코스는 뉴욕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센트럴파크, 뉴욕현대미술관이었다.


■7월11일

아침 7시1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델타항공 비행기를 타고 디트로이트에서 환승해 뉴욕으로 가는 14시간 일정이다. 델타항공 강추다. 기내식, 영화 등을 포함한 서비스도 그렇고 좌석도 편안했다. 굳이 국적기를 이용해 줄 필요는 없었다. 환승도 짐을 따로 찾아 붙일 필요없어 빠르고 편리했다. 책보며, 영화보면, 환승대기 때는 다운받아간 영화보며 편안하게 갔다. 드디어 뉴욕으로.

 


■7월12일(뉴욕)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얇았다. 햇빛은 눈을 따갑게 했지만 자유의 여신상이 다가서자 썬그라스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아재가 되어서야 처음 본 실물. 원작의 아우라는 괜히 마음을 들뜨게 한다. 어릴 때 필통에서, 연습장에, 책받침에서나 보던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드디어 봤다. 영화 <대부>에서 어린 돈 꼬리오네가 미국으로 건너와 한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던 그 자유의 여신상. 자유의 여신상만 본 것으로도 여행의 목적을 다 이룬 듯 좋았다. 오전에는 뉴욕 시내 관광. 


뉴욕 월스트리트 황소상 앞에서 기념컷. 도로가 좁은 공간에서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짧게 한 장씩 찍었는데 아쉽다. 포털을 검색해보니 월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곳에 서 있는 청동 황소 조각은 오랜 시간동안 월스트리트의 마스코트로 사랑받아 왔다고 한다. 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은 맨해튼을 위협하는 적군과 인디언들로부터 맨해튼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벽(wall)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그냥 시가지 한 가운데 솟은 고층빌딩 중의 하나라는 느낌. 별로 감동받지 않았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엔딩 장면에서 나오는 입구며, 전망대 정도 반가웠을 뿐. 그래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열심히 인증샷을 찍었다. 높이는 443m로 이제는 ‘키 작은 고층 빌딩’이지만 한 해 평균 350만명이 들른다고 하니 유서깊은 건축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전망대도 나에겐 그리 감동적이지 않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이 그리 설레이지 않은 나이가 된 듯하다.

 점심은 맨하튼 중심가의 유명 한식당에서 먹었다. 이렇게 줄을 서서 뉴욕에서 밥 먹는 게 잘 믿기지 않았다. 단체 관광객 서빙 솜씨도 능숙하다. 이곳에서 다음날도 먹어 모두 두 끼를 해결했는데, 맛이 괜찮았다. 순두부 강추!!

 인트래피드 항공모함 박물관이 선택 관광으로 끼어있었는데, 정말 흥미가 없어 포기했다. 뭐 여기까지 와서 ‘군대 문화’를 봐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저냥 산책 정도로 시간을 때울 생각이었는데, 근처에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있었다. 선택관광료에 비하면 매우 싼 값이다. 자전거를 타고 뉴욕 허드슨 강변을 따라 유유자적하며 사진도 찍고 그늘에서 쉬면서 두 시간을 아들과 놀았다. 



 (이 사진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역 고가 공원의 모델이 됐다는 뉴욕의 고가다리 공원 사진이다.)

 가이드 말로는 구한말 고종의 칙사들이 뉴욕에 와서 묵었다는 호텔 구경도 했다. 호텔 내부나 주변은 기억에 남아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검색을 해도 찾기 힘들다.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소개돼 있다.

 1883년 9월 18일 뉴욕의 한 호텔 1층 대연회장. 한 해 전 맺은 조·미 수호통상조약에 따른 답례차 민영익을 필두로 한 11명의 사절단이 고종의 친서를 들고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을 알현했다. 아서 대통령이 웃음을 머금고 악수를 청하려 할 때 민영익의 신호에 맞춰 사절단 일행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큰절을 올렸다. 이튿날 뉴욕 신문에는 당황해하는 아서 대통령의 조선 사절단 접대 장면을 그린 생생한 삽화가 실렸다. 양국 간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자주색 도포 차림의 사절단 복식과 함께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부산일보 밀물과 썰물)

 아하 이를 바탕으로 다시 검색을 해보니 호텔이름이 나온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에 나온다. 우리 회사 대표 필진답다는 생각이 들며 존경 모드. 피브스 에버뉴 호텔로 뉴욕 23번가에 있다고 한다. 다음은 기사 일부


 조미통상조약 체결 즈음인 1880년대만 해도 미국을 향한 조선 지배층의 환상은 대단했던 것 같다.

 미국은 조약체결 10개월 만인 1883년 5월22일 루시우스 푸트(조선명 복덕·福德)를 초대 전권공사로 임명해서 서울에 상주시켰다. 이에 고종은 민영익(1860~1914)을 정사(전권대신)로 한 사절단, 즉 보빙사를 미국에 파견한다. 보빙사 일행 11명은 1883년 9월18일 뉴욕 23번가 피브스 에버뉴 호텔 1층 대연회장에서 당시 체스터 아서 미국대통령에게 국서를 전달했다. 이때 역사에 남을 해프닝이 벌어졌다. 

 오전 11시가 되자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재인 1881~1885)은 접견실에서 보빙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사모관대를 갖춘 관복으로 차려입은 보빙사 일행 11명은 대접견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서 대통령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생전 처음보는 의전에 아서 대통령은 크게 당황했다. 아서 대통령이 조선보빙사의 뜻밖 큰절에 당황해하는 모습이 당시 뉴욕 신문의 삽화에 생생하게 실렸다. 당시 ‘뉴욕헤럴드’는 이 특이한 인사법에 대해 조선보빙사의 설명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소개했다.

 “이런 인사와 경례는 국왕이나 기타 독립국가의 국가원수를 알현할 때에만 행한다. 그 이외엔 이런 경례는 결코 하지 않는다.”(‘뉴욕헤럴드’ 1883년 9월19일)


■7월13일(워싱턴)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워싱턴으로 4시간 정도 달린 것 같다. 영국인 과학자 제임스 스미손(James Smithson)의 기부금으로 1846년 설립된 종합박물관인 ‘스미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Institution)부터 봤다. 그는 미국에 온 일이 없으나, 1829년 사망시 55만달러의 유산과 “인류의 지식을 넓히기 위한 시설을 워싱턴에 세우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 말고도 스미소니언 성이라고 불리는 빌딩자체를 둘러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라고 소개돼 있다. 두 시간 정도 관람 시간을 줬다. 나이들면서 드는 변화 중 하나는 미술관, 박물관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진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시간을 주면 좋겠는데 두 시간 정도면 그냥 후딱후딱 훑어보는 정도다. 사진 포인트가 되는 곳에서 사진 몇 장 찍고 좀 둘러보니 시간이 다가왔다.


 점심을 먹고,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기리는 링컨기념관,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을 추모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 공원’, 재퍼슨 기념관,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같은 필수 코스를 오후 일정으로 둘러봤다. 가이드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주요 포인트에서 사진을 자기가 찍어줬다. 주요 포인트이기는 한데, 사진 자체는 마음에 안든다. 내가 찍어도 사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별로 없기는 하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에는 세계 최강의 미국이 이렇구나 하는 것을 아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매번 뉴스에서 배경화면으로만 보던 백악관,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 백악관을 보면 뭔가 목표같은 게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 새로운 걸 보고, 느끼고 꿈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그건 내 마음뿐인 거 같다.



Posted by 박재현기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