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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 아워>는 중증외상센터의 기록이면서 이국종의 자서전이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사람을 살림으로써 밥벌이를 하는 외상외과 의사의 눈에 비친 우리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하다. 고독과 허무에 깃들어 차갑게 이어지는 문장은 분노와 열망, 열정을 묘사하고 있다. 그야말로 ‘단 한 생명도 놓치지 않으려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분투’는 처절했다. 글을 읽는 동안 몰입도는 무척 높았다. 그만큼 1권을 읽으면서 안타까움과 실망, 격려와 응원의 마음도 빠르게 찾아왔다.




■‘이국종의 <칼의 노래>’

 저자는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를 등뼈 삼아 글을 정리하려 애썼다”고 말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그가 왜 김훈과 칼의 노래에 자신을 투영했는지 느낄 수 있다. 백성과 강토에 덤벼드는 왜군과 싸워 승전보를 올렸으나 고문하고 파직시켜 목숨을 빼앗으려는 임금 앞의 이순신. 사람을 살려낼수록 고독하게 오명을 뒤집어쓰고 사회의 시스템과 싸워야 하는 이국종. 그 둘의 닮은 운명이 김훈으로 이어졌던 셈이다. 그러나 “부여받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죽음으로써 세상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이순신”은 사실 그가 말한대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김훈 선생이 그려낸 이순신은 내가 26년전 해군에서 군 복무를 할 때 만난 이순신의 모습과 정확히 같았다. 보직으로 부여받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죽음으로써 힘겨운 세상에서 해방되고자 한 이순신에게서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직장인의 모습을 보았다. 또한 세상에 모멸과 치욕을 오롯이 감내하면서도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그에게서 조직 내 중간관리자의 고통도 보았다.(12쪽)

 

 나는 중증외상센터 설립 과정에서 실제 한국 사회가 운영되어 가는 매카니즘을 체득했다. 그 과정은 매일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칠만큼 지옥 같았다. 시스템은 부재했고 근거 없는 소문은 끝없이 떠돌았으며 부조리와 불합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돈 냄새를 좇는 그림자들만이 선명했다. 그 속에서 우리 팀들은 힘겹게 버텼다. 나는 어떻게든 정부 차원의 지원을 끌어들여 우리가 가까스로 만들어온 선진국형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싶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더듬어가며 길을 찾아 왔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현실화하기 위해 나와 팀원들 모두가 쉼 없이 분투에 왔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 당도하여 확인한 것은 중증외상센터 사업은 현재 한국 사회가 지낸 투명성의 정도는 불가능하다는 것뿐이다. 지금껏 선진국형 의료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헛된 무지개를 좇아왔으나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9쪽)



■막장 속의 의사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열심히 살릴수록 적자의 원인이 되는 역설적인 현실. 학교와 병원내의 냉소와 수근거림. 국가 시스템의 부재. 한 목숨이라도 살리기 위한 해답으로 선진국형 중증외상 치료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녀보지만 신기루같은 아득함. 그 과정에서 감내해야 하는 마음의 상처, 부서지는 육체. 그는 자주 절망한다.

 그 절망은 차분하지만 울분이 서린 문장을 잉태했다. 그러한 문장으로 그려낸 현실 진단은 차갑고 냉정했다. 서문을 넘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현장에서 활기가 돌고 활기는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쳐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 왔다. 봄기운에 밖으로 이끌려 나온 사람들이 늘었고 늘어난 사람만큼 사고도 잦아 붉은 피가 바닥에 스몄다.”


 삶뿐 아니라 죽음에 임박해서도 사회적 계급의 격차를 목도한다. 그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는 의료시스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일수록 외면당하는 현실은 사람을 살려내야 하는 의료계에도 역설처럼 깃들어 있다. 


 사지가 으깨지고 장기가 부서져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온 환자들은 외상외과적 수술과 집중치료를 받아야 산다. 수술은 한번에 끝나지 않는다. 필요한 생명유지장치와 약품의 수는 너무 많다. 치료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자동차 보험, 산업재해 보험, 각종 사업체 주도의 공제조합들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일반 환자 기준에 맞춰 진료비를 지급했다. 투입된 비용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진료비만 병원에 지급되므로, 병원에는 심각한 손실이 발생했다. 초대형 병원은 중증외상 환자를 수용할 이유가 없었다. 반면 정규 환자 부족에 시달리는 종합 병원들은 이런 부담을 안고서라도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발생한 외상 환자들을 유치하려 애쓰고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중증외상 환자 이송 체계’가 존재하기란 아예 불가능했다.(57쪽)


 의사라는 직업도 역시 화려한 권력의 지위는 아니었다. ‘적자의 원흉’으로 주변의 냉소를 견뎌야 했다. 전문의를 찾으려 백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수도자가 되려는 사람을 만나 중증외상의 분야에서도 ‘순교를 할 수 있다’는 부분을 읽을 때 누군가는 싫어도 해야하는 일이 반드시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받아야 하는 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의 원인이 모두 내게 있었다. 틈틈이 심사평가원에 사정하는 글을 써 보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약품과 장치들을 기준에 비해 초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함을 적었고, 교과서의 내용을 통째로 복사해 첨부했다. 그럼에도 삭감진료비 회수율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사유서는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누군가가 읽었다 해도 정상참작은 요원한 일이었다. 심사위원 중에 외상외과를 전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세계적으로 쓰이는 외상외과 교과서의 표준 진료지침대로 치료했다는 내용의 자료를 수십 차례 제출해도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환자마다 쌓여가는 삭감 규모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도 이르렀다. 결국 

나는 연간 8억원이 넘는 적자의 원흉이 됐다. 매출 총액 대비 1~2퍼센트의 수익 규모만으로 유지되는 사립대학 병원에서 나는, 일을 하면 할 수록 손해를 불러오는 조직원이었다.(60쪽)


 중증외상은 국민이 사망하는 3대 사망 원인 중 하나로 전체 사망 20% 육박합니다. 특히 40대 이전에 젊은층에서는 최고로 많은 사망 원인입니다. 노동자 농민과 같은 블루칼라 계급이 집중적으로 타격을 있습니다.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수익은커녕 적자의 온상이라 기피합니다. 많은 병원들이 암이나 심혈관 질환처럼 만성병의 집중하는 상황에서 중증외상환자 치료를 담당할 시설은 거의 없고 적절한 의료진 양성도 힘듭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려고 국가적 중증 외상시스템을 기존의 일반 병원이나 응급실 운영체계와 분리해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논의가 더는 진행되지 않습니다.(123쪽)



 그러나 그는 의사로서 무엇보다 죽음에 다가선 사람을 삶으로 건지려했다. 현실을 바꾸고자 했다. 그래서 미국과 영국 연수에서 배워 온 선진 시스템을 이식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건 체념하라는 훈계와 냉소였다.


-여기가 미국인 줄 알아? 한국에 돌아온 후에 반응은 막막했다. 한국에는 한국만의 질서가 존재했다 기껏 찾은 답은 쓸 수 없었고 현실적인 난관을 피할 수 없었다. 외상외과를 하면 할수록 선진국과 한국의 간극을 절감했다.(53쪽)

-말이 끝났을 때 시큰둥한 목소리로 나의 말을 받았다. 이 선생 여기는 영국이 아니잖아 나도 미국에서 연수 받았지만 거기에서 하던 걸 한국에서 다 할 수는 없어.(110쪽)



 삶의 막다른 곳에 이르렀을 때 세상은 ‘막장’이라고 한다. 이국종은 병원에서 그곳의 막장뿐 아니라 세상의 막장을 자주 마주쳤다. 건설현장에서 철야 작업을 하다 8층에서 추락한 채 다른 병원을 떠돌다 골든아워를 훌쩍 넘겨 온 40대 환자는 결국 숨졌다. 수술을 마친 후 새벽 보호자실에는 어린아이 둘 뿐이었다. 원칙적으로 환자 개인의 문제에 대해 의사들은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지만 이 아이들만은 지나쳐지지 않았다. 이를 맡아 줄 사람들을 지인에게 부탁했다. 환자가 죽고 며칠이 지나 아이들은 엄마라는 사람이 나타났고 여자는 두 아이를 데리고 두 달을 살다가 망자의 생명보험금을 수령한 뒤 다시 사라졌다. ‘막장’이라는 장에 펼쳐지는 씁쓸함에 가슴이 쓰렸다.


■비루함 속에서 찾는 희망의 노래

 그는 문장으로 김훈을 따르려했지만 문장의 토대는 현실이었고, 현실에서 오는 고독이 그의 문장에 닿았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많다.


 함박눈이 내려 길이 위해 눈이 쌓여 있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눈 밟히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내 몸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설빙이 바스러지며 토해내는 울음 같기도 했고 얼음 결정들이 한데 엉겨 붙는 외침 같기도 했다.(312쪽)


 스스로가 초라했다. 마치 유효 기간이 다 되어 폐기 직전인 편의점에 김밥 같았다. 처음부터 나의 자리는 모퉁이였고 갈수록 모퉁이의 모퉁이로, 다시 또 모퉁이로 밀려나는 것만 같았다. (382쪽)



 그는 “얼음장 같은 시선들 사이에서 수시로 비참했다. 무고했으나 죄인이었고, 나아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면서 “나의 목숨이 내게 오는 환자들과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열정과 희망은 차가운 얼음장같은 마음속에서도 자란다. 포기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 잡으면서 다시 열정을 노래한다.


 스승 임대진 교수는 말하곤 했다. 밥벌이의 종결은 늘 타인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그때까지는 버티는 것이 나은 법이며 나 스스로 판을 정리하려는 노력조차 아까우니 힘을 아끼라는 그의 말이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여겼다.(125쪽)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조직 내 수많은 고위급 인사들은 아는 체 하며 타이르듯 말한다. 조직은 몇몇 사람의 힘으로 끌려가서는 안 되며 누가 그 자리에 오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 진리이나 이것만큼 누구나 다 아는 거짓말은 없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특히 특정한 오너가 없는 대부분의 공조직이나 학교와 같은 조직에서 업무를 추진하거나 정책 방향을 밀어붙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 추진력은 해당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열정으로부터 나온다.(132쪽)


Posted by 박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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